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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힘차게 시작한 2일차, 오늘은 일본 선교의 역사탐방을 통하여 일본기독교 역사의 편견을 바로잡고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날입니다. 춥고 비오는 날씨가운데 아침 7시반에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나가사키로의 일정을 시작으로 밤 9시까지 정말 많은 곳들을 쉴새없이 다니며 배웠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느라 소화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자세한 브리핑은 나중에 윤오규 집사님께서 해 주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일정들을 관통하는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가사키 원폭 기념관입니다. 원폭 이후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일본은 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합니다. 그 조사의 동기 중 하나는 원폭을 한 주체들에 대한 항의, 그리고 나가사키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했던 (파괴된 교회가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었는데요, 이러한 의도로 시작되었던 연구와 조사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잊혀졌던, 아니면 외면하고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근 삼백년간의 처절한 박해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원래 투하 예정지가 아니었지만 당일 구름으로 인해 변경된 계획에 의해 원폭이 떨어졌던 그 나가사키가 일본 기독교 순교의 첫 장소였습니다.

 

1549년에 선교사들이 포교를 시작한 후 빠르게 일어났던 부흥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선교사 추방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독교 금지령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근 삼백년동안 철저하게 탄압당하고 맙니다. 1597년에 최초의 순교자 26명 이후 3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며 순교당하게 됩니다. 당시의 포고령에 의하면 선교사를 신고시 은 500냥 (은 1냥 = 1년 노동자 급여), 전도자는 300냥, 기독교인은 100냥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함으로서 기독교인들의 씨를 말라버렸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사라진듯한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은, 놀랍게도 그 서슬퍼런 탄압아래에서도 그 믿음을 지켰습니다. 골방에서, 그리고 마을의 숨겨진 회당에서 지도자들은 그들의 신도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귀와 코가 잘린 채 오사카로부터 나가사키까지 보름동안 그 먼 거리를 끌려다닌 후 나가사키 언덕에서 죽음을 맞이한 26명의 순교자, 함께 화형을 당한 어머니와 그 어린 아이들, 그 귀한 신앙을 지켰던 소토메조의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 등등, 이를 형상화한 시대의 명저 엔도슈사크의 '침묵'까지. 저희의 얄팍한 믿음이 부끄럽게 느껴짐과 동시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홈리스들을 위한 고기를 재우며 긴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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